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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 삼성전자 육상단 선수들과의 밀접 인터뷰 및 기획 소식을 웹진에 담았습니다.

포커스섹션

전일본경보50km대회 다카하타에 가다

게시일 : 2008-11-20 | 조회수 : 13,453

* 전일본경보50km대회 다카하타에 가다

지난 10월 필자는 전일본경보50km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단과 함께 일본의 다카하타라는 생소한 지명의 도시를 방문했다. 4년간 삼성전자 육상단 프런트로 일하면서 선수단과 함께 많은 국제대회와 해외전지훈련에 동행했던 나는 이번 포커스섹션에서 내 경험에 있어 가장 작은 도시에서 있었던 가장 길었던 경기에 대한 얘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진설명 : 경기 하루 전에 다카하타 시청에서 열린 전일본경보50km대회 개회식 관련사진
사진설명 : 경기 하루 전에 다카하타 시청에서 열린 전일본경보50km대회 개회식

* IAAF가 인정한 일본 농촌마을의 경보대회

다카하타는 일본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 3만의 농촌마을로 도쿄에서 신칸센 기차를 타고 약 2시간30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우리에게는 정말 낯선 곳이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우리 일행은 다행히 같은 시기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일본체육대학 장거리기록대회 출전을 위해 도쿄까지 동행한 무라오 수석코치의 도움으로 무사히 신칸센을 탈 수 있었고, 창 밖으로 펼쳐지는 일본의 가을정취를 마음껏 느끼며 해외에서의 첫 장거리 기차여행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강원도의 태백산맥을 연상시키는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계곡으로 이뤄진 산맥을 넘고 나서야 도착한 다카하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농촌마을 이었다. 역 주변은 온통 논이었고, 주변에 변변한 상가조차 보이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시내 역시 3층이상의 건물이 없을 정도의 작은 도시 다카하타. 그러나 여기서 열리는 경보경기는 결코 도시의 규모처럼 작은 대회가 아니다.
#. 사진설명 : 다카하타역(오른쪽 건물) 주변전경, 왼쪽 2층 건물이 호텔 관련사진
#. 사진설명 : 다카하타역(오른쪽 건물) 주변전경, 왼쪽 2층 건물이 호텔
올해로 47회째를 맞는 전일본경보50km 대회는 하반기 일본에서 열리는 경보경기 중 가장 권위있는 대회로 타이틀에는 50km라는 말이 있지만 남녀20km, 중·고교 선수들이 출전하는 10km, 5km, 3km 까지 다양한 경기로 구성된 종합경보대회다. 더구나 올해는 2009년 베를린세계육상선수권 대표선발전까지 겸하고 있어, 일본 육상계와 언론의 관심이 뜨거웠다.

무엇보다 전일본경보대회에서 한국육상이 본 받아야 할 것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가 이 대회를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경보는 다른 육상종목과는 달리 심판이 얼마나 경보의 룰을 엄격하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경기결과가 크게 좌우된다. 러시아 등 경보 강국의 선수들조차 국제대회보다 국내대회에서 훨씬 좋은 기록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에 따라 IAAF는 2007년 오사카세계육상선수권부터 IAAF 또는 대륙별 육상연맹이 주최하는 국제대회에서 수립된 기록만을 기준기록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국내대회가 10개 남짓 있는데 여기에 바로 이 전일본50km대회가 포함된다. IAAF는 비록 국내대회이더라도 6명의 심판 중 국제심판이 3명 이상 포함돼 국제 룰을 엄격히 적용하는 대회에 한해 기준기록통과를 인정해주고 있으며, 한국에는 아직까지 인정되는 대회가 없다.

삼성전자 육상단의 보단 부라코프스키 코치는 한국 국내경기를 지켜볼 때면 출전하는 일부 선수들은 경보선수가 아닌 러닝선수라고 혹평할 때가 있다. 참고로 보단 코치는 유럽육상연맹이 발급한 경보 국제심판자격을 갖고 있다. 워킹자세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선수들도 주의 한 번 받지 않고 무사히 경기를 마치는 국내경기가 IAAF의 인정을 받는 권위있는 대회로 발전하기에는 아직 그 길이 너무 험난해 보인다.

* 일본의 신세대 경보 스타 야마자키 유키

올해 일본 육상계는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표종목인 마라톤의 메달획득 실패로 큰 실망감과 함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남자경보에서는 큰 수확을 거두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올해 만 24세인 야마자키 유키. 베이징올림픽 남자경보50km에서 7위, 20km에서 11위를 차지한 선수다. 이 선수가 주목받는 이유는 어린 나이에 올림픽 입상권에 들었다는 것도 있지만, 올림픽 이후 밝혀진 그의 엄청난 훈련량 때문이다.

여자마라톤 지도자 출신인 스즈키 츠쿠미시 코치의 지도하에 크로스컨트리, 고지훈련 등 마라톤 훈련법을 도입했고, 하루에 4 ~ 5차례의 훈련스케줄과 1개월에 1500km ~ 1600km에 이르는 강훈련을 소화한 야마자키 선수는 1년 여 만에 놀랍게 성장해 결국 베이징올림픽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일본 언론은 그의 성장추세라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사진설명 : 야마자키 유키가 스페셜 음료대를 지나는 모습 관련사진
# 사진설명 : 야마자키 유키가 스페셜 음료대를 지나는 모습
국제대회에서 여러 번 만난 경험이 있는 필자는 다카하타행 신칸센에서 우연히 야마자키 선수와 마주쳤다. 그 역시 내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권이 걸린 이번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기차를 탔고 우연히 우리 선수단과 시간이 같았던 것이다.

다카하타에서 나는 야마자키 선수의 훈련량에 대해 언급한 언론기사들이 거짓이 아님을 새삼 느꼈다. 오후 4시 쯤 기차역과 붙어 있는 호텔에 들어 선 나는 체크인이 끝나자 마자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홀로 호텔 정문을 나서는 야마자키를 볼 수 있었고, 나의 인사와 질문에 그는 '긴 기차여행으로 굳어진 몸을 풀어주지 않으면 컨디션이 엉망이 되기 때문에, 바로 훈련을 시작한다."라고 답했다.

물론 우리 선수단의 임정현 선수도 호텔에 짐을 푼 직후 가벼운 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동행했던 보단 코치의 말에 따르면 옆에서 지켜본 야마자키 선수의 훈련은 가볍게 몸을 푸는 수준이 아닌 일반 선수들의 주요 훈련스케줄에 맞먹은 강도높은 훈련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야마자키 선수와 친분이 있는 보단 코치는 그를 'Training Mania'(훈련광)이라고 부른다.

나는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에게도 이런 '훈련광'의 면모를 자주 본다. 일례로 선수단이 해외대회나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해 저녁 5~6시쯤 숙소에 도착하게 되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간단한 식사 후 편안한 휴식을 즐긴다. 그러나 이봉주 선수는 도착 후 곧바로 운동장에서 약 1시간30분 정도의 조깅을 마친 후에야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한다. 운동선수에겐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피땀 어린 노력이 없다면 절대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 50km 그리고 4시간의 사투

이번 대회에 출전한 삼성전자 육상단의 임정현 선수의 목표는 4시간 9분 이내. 바로 내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B기준기록을 통과하는 것이다. 올해 5월 세계경보컵대회에서 4시간17분11초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인 그는 경기 전 자신감을 보였지만 마라톤보다 긴 거리의 경기는 함부로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세계경보컵이 열렸던 러시아 체복사리에서도 임정현 선수는 3시간58분대의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35km 지점에서 급격하게 페이스를 잃은 적이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나는 선수가 음료수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워 하는 모습에 안타까워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4시간 넘게 진행된 경기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육상 경기 중에서도 경보는 대표적인 비인기 종목이다. 장거리 종목인데다가 걷는 종목이기 때문에 굉장히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인데 실제 경기를 지켜보면 생각보다 매우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그리고 마라톤과는 달리 2~3km의 코스를 계속 왕복하기 때문에 관중들은 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해외 경보대회를 보면 코스 주변에 임시로 설치된 카페에서 음료나 맥주를 즐기면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경기 당일인 10월26일 아침8시, 구름이 잔뜩 낀 가운데 섭씨 10도 안팎의 기온. 경기에 최적의 날씨에서 23명의 남자경보50km 출전선수들이 스타트했다. 보단 코치가 사전에 지시한 페이스대로 차분하게 경기를 진행한 임정현 선수는 시종 자신감에 찬 표정이었다.
#. 사진설명 : 임정현 선수(23번)의 경기모습, 일본선수에 비해 여유있는 표정이다. 관련사진
#. 사진설명 : 임정현 선수(23번)의 경기모습, 일본선수에 비해 여유있는 표정이다.
드디어 선수들에게 체력적인 한계가 찾아오는 35km지점. 이 때부터 나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선수에게 보단 코치의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수시로 실격 현황판도 살펴보고, 선수의 집중력 유지를 돕기위해 코스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응원도 해야 했다.

다행히 임정현 선수는 힘겨운 상황을 이겨내고 4시간04분43초를 기록하며 세계육상선수권 B기준기록을 통과했다. 중반까지의 순위는 7위였지만 마지막까지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2명을 추월해 5위로 골인했다. 선수는 물론이고 보단 코치와 나는 서로를 격려하며 목표달성을 자축했고, 일본 육상관계자들과 심판들도 우리 선수단에게 임정현 선수의 세계육상 기준기록 통과를 축하해 주었다.

올해 전일본경보50km대회의 최대 관심거리는 단연 야마자키 선수의 일본최고기록 돌파 여부였다. 야마자키는 출발부터 줄곧 선두에서 홀로 걸으며 3시간41분29초의 일본최고기록을 세워 관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나도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축하해 주었지만, 한편으론 언젠가 우리 선수들이 그를 넘어서길 간절히 기원했다.

* 한국육상의 블루오션 경보50km

경보는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세계 정상을 목표로 지정한 전략종목이다. 그리고 실제 최근 기록을 살펴보면 남자경보20km의 김현섭, 박칠성 선수는 세계랭킹 20위권 이내에 오르며 육상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반면, 남자경보50km는 그 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된 면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아예 50km경기 자체가 열리지 않고 있으며, 올해 이 종목을 경험한 한국 선수는 단 3명 뿐이다.

공식적으로 육상 최장거리 종목인 남자경보50km는 세계적으로도 선수층이 두텁진 않다. 게다가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선수들도 30대 후반의 노장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최근 전략적으로 젊은 20km 선수들을 50km 경기에 출전시키며 세계대회에서의 메달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올해 만 21세인 임정현 선수는 두 번째 완주만에 세계육상 기준기록을 통과했다. 3시간34분대의 세계기록에는 아직 한참 못 미치지만, 우리 선수들은 아직 젊고 이제 막 이 종목을 시작했다. 야마자키도 엄청난 훈련량을 바탕으로 2년 동안 놀라운 발전을 이뤘듯 우리 선수들도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 사진설명 : 경기가 끝나고 환하게 웃고 있는 보단 코치와 임정현 선수 관련사진
# 사진설명 : 경기가 끝나고 환하게 웃고 있는 보단 코치와 임정현 선수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남의 잔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 한국 육상... 선수들의 경기력만 탓할게 아니라 선수들의 경기력이 향상될 수 있는 빠르고 효과적인 길을 터 주어야 한다.

국제기준에 맞는 심판진 구성, 선수들의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설계된 고저도가 거의 없는 시내 2.5km 왕복구간, 농촌마을의 축제로 자리잡은 역사와 전통, 그리고 일본인 특유의 철저한 사전준비로 완성된 다카하타의 전일본경보대회. 한국에서도 이런 대회가 하루빨리 만들어지길 희망해 본다.
삼성전자 육상단 홍창표 대리(cp007.hong@sam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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