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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이 남긴 한국 육상의 과제와 희망

게시일 : 2012-08-29 | 조회수 : 14,285

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올해 여름, 런던올림픽에서 놀라운 선전을 거듭하며 짜릿한 승리와 메달행진을 벌인 한국 대표선수단의 소식에 국민들은 감동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무더운 열대야를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국은 금메달 10개, 종합 10위라는 목표를 조심스럽게 내놓았고, 세계언론은 이 마저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이들의 예상을 비웃듯이 여러 종목에서 의외의 메달들을 쏟아 내며 금메달 13개로 당당히 한국의 이름을 올림픽 국가순위 5위에 올려 놓으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기대에 비해 부진한 성적을 낸 일본, 독일, 호주 언론 등은 한국 선수들은 올림픽에 강한 DNA를 갖고 있다며 부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런던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한 육상은 여전히 한국 스포츠가 선진화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 이번 올림픽 마라톤, 경보 경기를 분석해 보고 앞으로 한국 육상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1) 남자마라톤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 사무엘 완지루(케냐)는 출발 총성과 함께 빠른 페이스로 속도전을 유도했다. 경쟁자를 의식하지 않고 스피드를 유지한 완지루가 경기를 지배하며 2시간6분32초의 올림픽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던 4년 전의 경기양상과는 다르게 런던올림픽에서는 레이스 초반 케냐와 에티오피아 선수들간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전개됐다.

 

10km까지 계속된 눈치싸움으로 아프리카 선수들만의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경기는 브라질, 미국, 일본 선수들이 포함된 40여 명의 선수들이 선두그룹을 이뤄 달리는 상황이 되었고, 한국의 이두행 선수도 선두그룹 후미에서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10km를 넘어서자 케냐의 윌슨 킵프로티치가 갑작기 스피드를 올리기 시작했고, 스피드 능력이 부족한 비아프리카 선수들은 이내 선두그룹에서 자취를 감췄다. 윌슨 키프로티치의 10km부터 20km까지의 스플릿 타임은 29분10초 였다. 트랙10000m 한국기록이 28분23초62, 역대 한국 선수 중 10000m 기록이 29분 이내인 선수가 6명에 불과한 현실에서 마라톤 10km 스플릿 타임 29분10초는 꿈만 같은 기록이다.

 

그러나 윌슨 키프로티치에게도 초반 스퍼트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는 한 동안 2위그룹을 200여 미터 앞서며 달렸지만 더 이상 간격을 벌리지 못하고, 30km지점에서 아벨 키루이(케냐), 스테펜 키프로티치(우간다)에게 추월을 허용했고, 결국 후반까지 체력을 유지한 스테펜 키프로티치가 아벨 키루이에 27초 차로 앞서 골인해 우간다의 유일한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 사진설명 : 남자마라톤 경기 후반 스테펜 키프로티치, 윌슨 키프로티치, 아벨 키루이(왼쪽부터)

                                     3명의 선수가 금메달 경쟁을 펼치고 있다.

 

마라톤에서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 두 가지는 스피드와 지구력이다. 과거 한국 선수들은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지구력을 앞세워 세계를 제패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스피드에 지구력을 겸비한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한참 밀리고 있는 현실이다.

 

아프리카를 제외한 한국, 미국, 일본, 유럽의 마라토너들은 보통 2시간10분 이내를 달리기 위해 10km 스플릿 타임을 31분 이내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에 반해 현대 마라톤을 주도하는 케냐의 스피드 러너들은 30분 이내의 10km 스플릿 타임을 유지하며 2시간 5~6분대 기록을 양산하고 있으며, 일류 선수들은 후반 스퍼트 시 10km를 28분대에 달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트랙10000m 기록이 30분을 넘어서는 선수들이 국제 마라톤대회에서 상위권에 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동안 한국 육상은 아프리카 선수들과의 스피드 격차를 줄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고, 이제 서서히 그 결실을 보고 있다. 10년 넘게 깨지지 않던 5000m, 10000m 한국기록이 젊고 재능있는 선수들에 의해 경신되었고, 스피드 능력을 갖춘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하나 둘씩 마라톤에 뛰어들면서 한국 마라톤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2010년에 5000m에서 13분42초98의 한국기록을 수립한 백승호(건국대, 22세) 선수는 올해 10000m에서도 28분25초19로 한국기록(28분23초62)에 육박하는 기록을 세우며 뛰어난 스피드 능력을 보이고 있다. 김 민(삼성전자, 23세) 선수 또한 5000m 13분대, 10000m 29분대 기록을 보유해 스피드에서 만큼은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 밖에도 최근에 20대 초반의 많은 대학선수들이 해외 트랙대회에 출전해 좋은 기록을 수립하고 있어, 한국 남자마라톤은 지난 수 년간 겪었던 유망주 고갈 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있다.


(2) 여자마라톤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프리카의 바람이 거세지 않았던 여자마라톤에서도 2010년 이후 케냐와 에티오피아를 필두로 아프리카의 선수층이 두터워지면서 점차 스피드가 강조되고 있다. 또한 유럽과 미국에서는 중장거리 트랙 선수들이 마라톤에 뛰어들면서 여자마라톤의 스피드화는 점차 가속화되는 느낌이다.

 

런던올림픽 여자마라톤은 이런 최근의 추세가 그대로 반영됐다. 이전의 올림픽에서는 30km 이후의 지구력과 경기운영 전략이 승부를 갈랐지만, 이번에는 아프리카 선수들이 초반부터 빠른 페이스로 레이스를 주도해 경기가 중반에 접어들기도 전에 이미 5~6명으로 선두그룹이 좁혀졌다. 케냐, 에티오피아, 러시아 선수들로 이뤄진 선두그룹은 한 번 끌어올린 스피드를 마지막까지 유지했고, 후반으로 갈수록 페이스는 점점 더 빨라져 여자마라톤 전통의 강호인 일본, 중국 선수조차 맥을 못 췄다.

 

금메달을 차지한 티키 겔라나(에티오피아)의 기록은 2시간23분07초로 4년 전 베이징올림픽의 우승기록(2시간26분44초)에 비해 3분 이상 빠른 올림픽신기록이었고, 10위까지 2시간25분대를 기록할 정도로 빠른 레이스였다.

 

                  #. 사진설명 : 여자마라톤 경기후반 선두그룹 4명의 경기모습, 앞쪽부터 마리 케이타니, 티키

                                     겔라나, 프리스카 젭투, 타티아나 페트로바

 

한국 선수들은 빠른 페이스에 적응하지 못하고 초반부터 중하위권으로 밀렸다. 당초 에이스인 김성은(삼성전자, 23세)선수에게 20위권을 기대했지만, 해외대회 경험이 없는 김성은 선수는 큰 무대에 대한 긴장감으로 5km지점에서 근육경직이 나타나 제 기량을 펼치지도 못하고 하위권으로 경기를 마쳤다.

 

한국 여자마라톤은 남자에 비해서도 선수자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마라톤대회에서 엘리트 여자마라톤 완주 선수가 10명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할 정도로 절대적인 선수 숫자가 부족하다보니 치열한 경쟁구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경기력이 향상되길 바랄 수 없는 상황이다.

 

남자마라톤의 이봉주, 황영조처럼 세계적인 스타급 선수의 모델케이스가 없는 것도 약점이다. 국내 각종 육상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어린 선수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남자선수들은 이봉주와 황영조 같이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가 되겠다고 하지만 여자선수들은 올림픽 출전이 최고의 목표다.

 

선수자원이 부족하고 성공케이스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여자마라톤은 국제무대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국내대회 여자마라톤 우승은 2시간30분 내외에서 결정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1차적인 목표도 자연스럽게 2시간30분 이내로 정해지게 되고, 그에 따른 훈련과정도 여기에 맞춰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여자마라톤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2시간25분 이내를 달려야 한다. 그 정도면 언제든지 세계육상이나 올림픽 메달을 노려볼 만 하다. 2시간30분과 2시간25분. 혹자는 둘 사이의 간격이 매우 크다고 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것도 아니다.

 

이번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티키 겔라나는 2009년 마라톤 데뷔전에서 2시간33분대를 기록했고, 이듬해 2시간29분대, 그리고 2011년 2시간22분대를 기록했다. 은메달을 따낸 프리스카 젭투(케냐)는 2009년 2시간30분대, 2010년 2시간27분대, 2011년 2시간22분대를 달렸다. 동메달리스트인 타티아나 페트로바(러시아)는 3000m장애물 선수였으나 2007년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해 그 해 2시간35분대, 2009년 2시간25분대를 기록했다.

 

이 선수들의 기록단축 과정을 살펴보면 세 선수 모두 2시간30분에 못 미치는 기록으로 마라톤을 시작했지만, 1~2년 사이에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고 단숨에 2시간25분대를 넘어서면서 세계 일류 마라토너로 국제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김성은 선수는 2010년 21세의 나이에 2시간29분27초를 기록하며 주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세계적으로도 그 나이에 2시간30분 벽을 넘어선 선수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이후 김성은 선수는 부상 등을 겪으며 성장세가 주춤했고, 이번 올림픽에서 아직은 배우고 경험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성은 선수가 세계 일류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단 한 번의 도약이 필요할 뿐이다. 23세에 불과한 김성은 선수가 잠시 멈췄던 성장엔진을 다시 가동한다면 언제든지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같은 기록추세를 보여 줄 수 있다. 단,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국내 1인자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시선과 세계 톱클래스 선수들과 부단히 경쟁하며 얻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3) 남자경보20km

 

런던올림픽 남자경보20km 결과를 한 줄로 요약하면 '러시아를 극복한 중국 신예들의 완벽한 승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첸 딩(20세), 왕 젠(21세), 카이 젤린(20세)으로 이뤄진 중국의 젊은 선수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1위, 3위, 4위를 차지하며 경기가 열린 런던 중심가를 오성홍기로 붉게 물들였고, 2008년 이후 메이저대회 우승을 놓치지 않았던 발레리 보르친은 중국 선수들의 막판 스퍼트를 무리하게 쫓아가다 실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사진설명 : 남자경보20km 경기 내내 선두그룹을 이끈 중국의 왕 젠(왼쪽), 첸 딩

 

사실 중국 경보는 풍부한 선수자원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세계 정상권을 유지하면서도 세계육상과 올림픽에서 번번이 러시아에 가로막혀 2인자로 만족해야 했다. 특히, 유럽심판들의 엄격한 잣대에 주요 고비마다 잦은 실격을 당해 분루를 삼킨 적도 많았다.

 

베이징올림픽 경보에서 메달획득에 실패한 중국 육상연맹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바로 유럽 코치를 영입해 유망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을 장기적으로 유럽에 파견해 훈련과 대회출전을 지속하게 한 것이다. 세계 정상권을 자부했던 중국 경보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유럽 심판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세계 경보계에서 살아 남기 위한 일련의 조치는 이번 올림픽에서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임이 증명됐다.

 

IAAF(국제육상경기연맹) 경보위원회 위원장 마우리조 다밀라노의 모국인 이탈리아에서 오랜 기간 훈련하며, 유럽에서 열린 각종 챌린지 대회에 출전한 중국의 젊은 선수들은 국제심판들에게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낯선 동양의 애송이들이 아니라 누구보다 친숙한  세계 정상급 선수들로 인식돼 있으며, 이런 친숙함은 중국 선수들이 실격에 대한 부담을 덜고 자신감 있게 경기에 임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국의 김현섭 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자신감과 적극적인 레이스 운영전략이지만 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김현섭은 지난 3월 중국에서 열린 IAAF경보챌린지에서 중국의 신예 3인방과 경기 중반까지 선두경쟁을 벌이다 실격을 당한 바 있다. 이전까지 국제대회에서 한 번도 실격되지 않았던 김현섭 선수의 워킹자세는 중국 선수들에 비해 크게 잘못돼 보이지 않았지만, 세계 최고수준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 선수가 국제심판들의 눈에는 어색하게 비춰진 듯 하다.

 

김현섭은 지난해 대구세계육상에서 6위를 차지하며 이번 올림픽에서는 그 이상의 성적을 기대했지만, 중국대회에서의 실격으로 큰 부담감을 안고 있었고 이는 경기에 그대로 나타났다. 중국 선수들의 주도로 레이스는 초반부터 빠르게 진행됐지만 김현섭은 실격을 피하기 위해 2위그룹에서 경기를 진행했고, 처음부터 선두그룹과 크게 벌어진 격차를 쉽게 줄일 수 없었다.

 

올해로 27세인 김현섭 선수는 향후 50km 종목 병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세계적으로 스피드가 중요한 경보20km는 탄력과 유연성이 좋은 20대 초반의 선수들 주축을 이루고 지구력이 승패를 가르는 경보50km는 20대 후반에서 30대를 전성기로 보고 있다.

 

한국 경보는 김현섭이 50km에 전념했을 때 20km 종목에서 그의 뒤를 이을 유망주를 하루 빨리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최병광(삼성전자, 20세) 선수가 올해 1시간23분45초로 본인기록을 3분 이상 단축하며 올림픽 B기준기록을 통과하는 성과를 거두고는 있지만, 아직 세계 수준에 도달하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경보팀 이민호 수석코치는 최병광 선수와 함께 20km에 주력할 유망주를 선발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고교선수 3~4명을 후보군으로 선정한 이민호 코치는 '젊고 재능있는 선수들로 경보20km 팀을 구성해 집중적인 훈련과 해외경험을 쌓는다면 2~3년 안에 김현섭 선수의 기록을 뛰어넘는 선수들이 나올 것이고, 이 선수들이 다음 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따낼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4) 남자경보50km

 

세계 최고의 철인을 가리는 남자경보50km 경기는 이번에도 역시 지구력과 인내심이 승부를 갈랐다. 4시간에 가까운 경기를 치러야 하는 선수들은 경기 도중 경쟁자를 뿌리치고 스퍼트하고 싶은 유혹을 수백 번도 넘게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유혹에 넘어가 잠깐이라도 무리하게 페이스를 올리면 경기 후반 그 몇 배에 해당하는 체력저하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경보50km 선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한 판단력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런던올림픽 남자경보50km는 우승자를 쉽게 점칠 수 없을 정도로 선수들의 실력이 비슷했고, 이에 따라 초반부터 선두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35km까지 유력한 메달후보였던 시 티안펭(중국), 세르게이 바쿨린(러시아), 요한 디니즈(프랑스), 나단 디에크(호주)가 번갈아 선두들 차지하며 흥미로운 경기가 펼쳐졌다. 그러나 선두로 나선 이들 4명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흥분하게 되었고, 결국 40km 이후 이들은 뒤따르던 추격자들에게 추월을 허용하고 말았다.

 

세르게이 키르디얍킨(러시아)과 자레드 탈렌트(호주)는 한 때 선두그룹에 20초 이상 뒤졌지만 후반을 노리며 침착하게 경기를 진행했다. 경기 후반 추격을 시작할 때도 결코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페이스를 올려 이미 힘이 빠진 선두그룹 4명을 제치고 금메달과 은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 사진설명 : 남자경보50km 금메달리스트 세르게이 키르디얍킨의 경기 장면

 

박칠성은 이번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17명의 한국 육상선수 중 유일하게 자신의 기록을 뛰어넘으며 한국기록을 수립했다. 비록 순위는 13위로 목표로 했던 10위권을 아쉽게 달성하진 못했지만, 경보50km 경기에 5번 출전해 벌써 세 번째 한국기록을 수립한 박칠성 선수의 기록단축 행진은 놀라울 정도다.

 

이번 올림픽 경보50km는 선두그룹이 초반부터 빠른 페이스로 레이스를 주도해 유례없이 좋은 기록이 많이 나왔다. 박칠성 선수가 이번에 세운 3시간45분55초는 지난해 대구세계육상 6위, 2008년 베이징올림픽 7위에 해당하는 상당히 좋은 기록이다.

 

세대교체가 필요한 경보20km에 비해 50km는 현재의 선수자원으로도 발전가능성이 매우 높다. 박칠성 선수 이외에도 한국선수로는 50km를 처음 시작한 김동영(삼성전자,32세) 선수가 아직 건재하고, 임정현(삼성전자, 25세), 오세한(국군체육부대, 24세)이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미 50km 훈련을 병행하고 있는 김현섭 선수도 언제든지 세계 정상권을 넘볼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아쉽게도 경보50km는 올림픽 종목임에도 국내에서 대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선수들은 매년 2~3차례 해외대회를 참가할 수 밖에 없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경보50km의 국제경쟁력이 빠르게 향상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경보팀 이민호 수석코치는 "한국 남자경보50km는 20km에 비해 선수들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하고 그에 따라 발전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특히, 지구력과 인내심이 강한 한국 선수들의 특성에 잘 맞는 종목으로 노하우가 조금 더 쌓인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성적도 가능하다."라고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한국 육상은 세계수준과 큰 격차를 드러내며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 1등, 메달만을 바라는 국민정서도 문제가 있지만, 세계 수준이 너무 높아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고 시작하는 선수들의 패배주의도 큰 문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한국 육상 출전선수 17명 중 본인기록을 경신한 선수는 경보50km의 박칠성 선수가 유일하다. 이는 올림픽이나 세계육상선수권에서 개인기록이나 국가기록을  경신하는 비율이 높은 다른 나라 선수들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 중에는 자신의 최고기록을 냈다면 결선진출은 물론 4~5위권이 가능한
선수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 본인기록에 한참 못 미치는 경기력을 보였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대한육성경기연맹은 런던올림픽이 끝난 후 대표팀의 대폭적인 물갈이를 예고했다. 국내 1인자지만 거기에 안주하는 선수가 아니라 발전가능성이 높고 세계무대에서도 당당히 제 실력을 펼칠 수 있는 유망주 위주의 미래지향적인 팀을 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올림픽 기간 중 세계 스포츠계에서는 '정신력'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왠지 진부한 주제처럼 보이지만, 요즈음 논의되고 있는 정신력은 과거에 자주 언급되었던 헝그리 정신과는 다른 개념이다.

 

예외의 경우도 있지만, 선수는 누구나 경기에 임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 낸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다른 선수에 비해 비교우위의 요소가 될 순 없다. 최근 얘기되고 있는 '정신력'은 오랜 기간 경기를 준비하는 힘든 과정을 견딜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강한 멘탈'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척박한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의지를 일컫는 헝그리 정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생존하기 위한 경쟁의식, 이러한 것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 바로 '지속 가능한 강한 멘탈'이다. 여기에 최근 스포츠 선진국들이 주목하는 것은 성숙한 자아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갖는 강한 목표의식이고 이를 위해서는 운동 선수들도 체계적인 교육과 독서, 명상 등을 통해 자아를 성숙시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한국은 이미 경제적인 측면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들었다고 볼 수 있다. 선수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강조할 시기는 이제 지났다고 본다. 그리고 육상은 헝그리 스포츠가 아닌 대표적인 선진 스포츠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첨단을 달리는 스포츠과학, 잘 짜여진 사회체육시스템, 사회자본의 장기적인 투자 등 스포츠 발전을 위해 많은 요소가 필요하겠지만, 오랜 기간 부단히 자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지닌 선수 자원을 육성하는 것이 한국 육상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삼성전자 육상단 홍창표 과장(cp007.hong@sam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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