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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
한국육상 스포츠외교의 첨병 전두안 경보 국제심판
게시일 : 2009-03-30 | 조회수 : 15,043
* 한국육상 스포츠외교의 첨병 전두안 경보 국제심판
얼마전 끝난 WBC 결승전. 경기를 중계하는 캐스터와 해설자는 줄곧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스포츠에서 심판판정에 대한 논쟁은 항상 있었고 이 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바로 스포츠 외교력이다.한국은 눈부신 경제발전과 더불어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유치 등의 성과를 일구며 세계 스포츠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주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제 스포츠 단체에서 활동하는 행정, 심판 인력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특히 세계 육상계에 미치는 한국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이번 파워인터뷰에서는 열악한 한국 육상의 국제환경 속에서도 스포츠외교의 첨병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두안 경보 국제심판을 만나 보았다.
* 한국에는 두 명 밖에 없는 경보 국제심판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제심판으로서의 주요 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국제심판으로서 당연히 국제대회에 참가하며 심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국제 스포츠대회는 단순히 경기를 진행하고 순위를 가리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 국의 선수단, 심판을 비롯한 임원진, 취재진, 그리고 팬들이 함께 하는 하나의 큰 이벤트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심판으로서 참가자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한국의 경보를 그들에게 알리는 일 역시 저의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또한, 경보는 다른 육상 종목과는 달리 워킹자세에 대한 심판진의 규정적용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정확한 국제규정을 확인하고 최근의 이슈사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국내에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입니다. 크게 보면 스포츠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어떤 계기로 경보 국제심판 자격을 갖추게 되셨는지요? 그리고 국제심판이 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 많은 후배들이 경보 국제심판 자격을 획득하고 함께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길 바라고 계실텐데, 국내에서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 한국 경보 1세대로 알고 있습니다. 국제대회에도 출전하셨다고 들었는데 선수시절 얘기 좀 해주시죠.
1975년으로 기억합니다.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제2회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당시는 한국에서 육상은 물론 다른 스포츠 국제대회도 거의 열리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국민적인 관심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 대회 경보20000m에 출전했는데 그게 제 첫 국제대회 출전이었고 굉장히 힘들게 완주했지만 기록은 하위권이었습니다.그 때 함께 출전해 우승했던 말레이시아의 쿠 종벵 선수도 현재 경보 국제심판으로 활약하며 저와 꾸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경보심판으로 국제대회에 많이 참석하시다 보면 해외대회와 국내대회의 많은 차이점을 느끼실 줄로 압니다.
* 한국 경보의 경기력에 대한 관심이 높으실텐데, 선생님께서 보시는 현재 한국 경보 선수들의 국제경쟁력은 어떻습니까?
최근 2~3년간 한국 경보선수들, 특히 남자선수들의 경기력이 놀랍게 향상됐습니다. 제가 심판으로 참여하는 국제대회에서도 우승, 입상 등을 하며 제 어깨까지 쫙 펴지게 만들었으니까요.그러나 몇 명의 선수로 한 국가의 전체적인 경쟁력을 평가하긴 힘이 듭니다. 아직은 절대적인 선수 자원이 너무도 빈약한 게 현실입니다. 기록 수준이 급속이 단축되고 있고 일부 선수들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도 손색없이 경쟁하고 있지만 좀 더 넓은 저변이 필요합니다.
현재 몇 명의 선수들이 분발해서 기록이 급속히 단축되고 있지만 박태환, 김연아 선수처럼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스타 선수의 출현, 연맹의 새로운 시도, 육상팀들의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한 국민들의 관심과 저변확대가 필요합니다.
* 성함이 예전 대통령과 상당히 비슷하신데,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으실 것 같습니다.
1987년 여름이었습니다. 88 서울올림픽 준비하면서 제가 경보분과를 맡았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정봉수 감독이 마라톤을 맡아 도로경기에 관한 모든 사항을 함께 점검했습니다. 그 때 당시로서는 구하기 힘들었던 무전기로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정봉수 감독이 제가 있던 코스를 확인하기 위해 무전기로 "전두안 나와라! 전두안 나와라!"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우리 둘은 정부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게 되었고, 제 실제 본명을 확인 하는 등 신원조회를 받고 무사히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그래서 이후로는 "2번 나와라!" 이런 식으로 번호로 연락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추억이지만 그 때 당시만해도 참 가슴 철렁한 사건이었죠.
* 상당히 오랜 기간 교직생활을 하셨고, 수원 유신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시다가 올해 초에 정년퇴임을 하셨습니다. 오랜 교직생활 중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
유신고등학교가 개교한지 얼마 안 된 시절이었습니다. 3회 졸업생으로 기억하는데 이승구 선수라고 장거리 선수였는데, 달리는데 특출난 실력을 보여서 그 선수 때문에 개교 초창기로는 쉽지 않았던 육상팀을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선수는 단 1명 이었고 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훈련을 열심히 했던 모습이 기특한 제자였습니다. 당시 전국대회였던 3.1절 대회에 참가해 입상을 하며 저는 물론 학교 전체가 정말 기뻐했었죠. 현재 수원시청 육상단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고 지금도 자주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육상단 홈페이지에는 한국 육상을 사랑하는 많은 팬들과 선수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육상계 원로로써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최근 학교체육과 관련된 정부의 주요 방침 중에 하나가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이 부족한 저변 속에서도 스포츠강국으로 올라 설 수 있었던 것은 소수 정예의 엘리트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얻은 결과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트 위주의 투자는 경기력 뿐만 아니라, 특히 스포츠 행정과 외교 부문에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이 은퇴 이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전두안 심판처럼 세계무대를 누비며 왕성한 활동을 계속 해야만 대한민국이 진정한 스포츠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 육상단 홍창표 과장(cp007.hong@sam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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