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선수생활의 막을 내린 화려한 은퇴경기. 이날 그의 고향이기도한 충남에서 은퇴식이 있었다. '국민 마라토너'의 은퇴로 화제가 되어 신문의 한면을 장식하기도 했던 이봉주선수의 눈물! 그를 눈물짓게 했던 바로 그 영상. 지난 20년간 41번 풀코스 완주, 올림픽 4회연속 출전, 아직도 깨지지 않은 한국기록 2시간7분20초...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흘린 아쉬움의 눈물은 온 국민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105회 보스턴 마라톤대회 우승! 이봉주 선수입니다! 참 대단한 일을 해냈습니다!!
"봉주야, 같이 육상해보지 않을래?"
유독 축구부보다 육상부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첫 육상, 독립기념관을 돌아오는 코스 10km. 그렇게 시작된 첫 육상에서 1990년 시골소년의 전국체전 첫 데뷔. 연약한 어머니, 아버지가 농사일로 고생한 것에 비하면 나의 삶은 호강한 것이다. 4번의 올림픽, 힘든 경기, 숨가쁜 경쟁 속에서 2시간7분20초 한국 최고의 기록. 2000년 도쿄마라톤, 달렸습니다. 그리고 또 달렸습니다. 결승테이프가 보일 때까지. 달리다 넘어져도 끝까지 달렸습니다. 나는 내 꿈을 이루었습니다. 태극 머리띠를 동여 맨 마라톤 선수. 우리는 그를 '봉달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그가 한국 마라톤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생각도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마라톤 한 길만 바라보고 달려야 할 그의 길은 험난했습니다. 평발이란 장애 그리고 불혹의 나이, 그래도 늘 꿋꿋이 달렸습니다. 그가 지금껏 뛰었던 거리만 해도 지구 네 바퀴. 그 편안한 웃음 뒤에 포기하지 않은 끊임없는 노력이 숨어 있었습니다. 우승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뛸 수 있다는 그 자체로도 행복해 하는 이봉주 선수. 내가 달릴 때마다 국민들이 보내준 성원은 사실 내가 훈련하면서 만든 근육의 힘보다 강했다. 1996년 아틀랜타 올림픽(은메달2:12:39), 1996년 후쿠오카 마라톤(1위 2:10:48), 1998년 로테르담 마라톤(2위 2:07:44) 한국기록 경신,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금메달 2:12:32), 2000년 도쿄 마라톤(2위 2:07:20) 한국기록경신, 2001년 보스턴 마라톤(1위 2:09:43),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금메달 2:14:04), 2007년 서울 국제마라톤(1위 2:08:04) 어느 순간 우리는 그가 몇 등을 했고 성적이 어떤지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가 달려 준 것만으로 너무 고마웠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보며 용기와 희망을 얻었습니다. 화려한 기록과 많은 이들의 찬사를 뒤로 하며 또 다른 길을 향해 공식무대를 떠나는 이봉주. 이제 그는 우리 가슴 속 깊이 친근한 이봉주 '봉달이'로 영원히 기억 될 것입니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가 은퇴를 해서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길을 떠나는 이봉주 선수에게 격려와 희망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