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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세계육상]대회 후기2;한국마라톤 이제는 변해야 한다
게시일 : 2003-09-16 | 조회수 : 5,079
8월30일 남자마라톤 경기가 열리고 있는 생드니 경기장내 C.I.C(Competition Information Center) 센타.
남자마라톤 중간 순위의 선수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는 가운데 일본 육상경기연맹의 무라오 강화기획 부장의 부산한 모습이 보인다.
그는 이미 골인한 자국선수들의 기록을 확인하고 단체전(월드컵) 경기 결과가 나왔는지를 C.I.C 자원 봉사자에게 묻고 있다.
하지만 아직 경기가 종료된 상황이 아니라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약 10여분이 지났을까?
장내 아나운서가 월드컵 우승국이 일본임을 확인하자 그는 환호성을 질렀다.
필자의 축하인사를 받자 마자 그는 바쁘게 C.I.C를 빠져 나갔다.
한국이 첫 단체전 입상 꿈에 부풀어 있다가 8위에 머물러 어깨가 처진 모습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다음날 벌어진 여자부에서도 일본은 1997년 아테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부터 시작된 마라톤 월드컵에서 4회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이는 남녀 모두 3명의 선수의 기록이 상위권에 고루 분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그러면 과연 일본의 이러한 성적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우선은 풍부한 선수층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장거리 등록선수의 수가 대략적으로 비교해도 한국의 10배를 넘는다.
또한 일본인 특유의 하고자 하는 근성이 기본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체계적인 선수의 육성, 마라톤 발전의 원동력으로 불리는 역전경주(에끼덴)의 활성화 등 그들의 성공요인을 꼽자면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면 과연 한국의 마라톤 발전을 위한 해법은 없는 것인가?
필자는 일본의 예에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한다.
① 기본은 선수들의 정신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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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제도나 많은 포상금이 걸려 있다고 해도 직접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하고자 하는 정신자세에 문제가 있다면 모든 것이 헛수고다.
국내 선수들을 만나 보거나 지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 보면 우리선수들의 정신자세가 매우 나약함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남자의 경우는 그나마 군문제가 있어 나름대로 노력을 다하지만 여자의 경우는 선수층도 적은데다가 軍 이라는 동기부여도 없어 조금만 힘들거나 문제가 있으면 쉽게 운동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어 매우 안타깝다.
특히 대부분의 실업팀이 시,군청팀인 한국의 특성상 1년에 한 번 전국체전에서 메달만 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선수들이 많아 전국체전이 육상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팀에서도 국내용이 아닌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선수의 육성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② 기초종목부터 체계적인 육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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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대학3학년이 되거나 고교를 졸업하고 실업팀에 입단한지 2년 정도만 되면 벌써 마라톤 경기에 출전한다.
이 시기에 마라톤에 입문하는 것이 너무 빠른 시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자들은 군 문제 때문에 여자들은 팀에 눈치가(?) 보이거나 지도자들의 성적에 대한 부담 때문에
조기 입문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이는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최근의 스피드 마라톤 경쟁에서 5000m를 14분대 초반, 10000m를 30분 초반에 달리는 한국의 남자선수들이 해외선수들을 따라 가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신체조건의 일본의 경우를 보면 선수권 대회 10000m에서 한국기록인 28분30초54 보다 빠른 기록으로 골인하는 선수가 20여명에 이르고 있다. 물론 10000m 기록이 좋다고 하여 모두 마라톤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2시간9분 이내의 현역선수가 단 3명인 한국과 10명이 넘는 일본의 수준차는 바로 여기에 있다. 10000m 최고기록이 27분대인 32세의 타카오카가 마라톤 도전 2번째만에 세계역대 4위인 2시간6분16초를 기록한 것은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었다.
이제부터라도 트랙 장거리 기록을 일정수준까지 끌어 올린 후 마라톤에 입문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자. 그러면 특출난 재질을 가진 선수가(황영조,이봉주 등)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차세대 선수를 걱정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그런 시스템에서 육성된 선수는 자신의 실력적 한계로 2시간7,8분대를 기록하지 못 할 수 있지만 9분대, 10분대에 진입하는 선수는 여러 명이 나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기 위해서 실업팀은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장기적인 포석으로 선수들을 육성해야 하며 특히 남자의 경우 군 입대 시에도 이를 계속 지속해 나갈 수 있도록 상무, 경찰대학과 실업팀의 연계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③ 우리도 외국인 페이스메이커를 운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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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일본이 어떻게 10000m에서 그런 우수한 기록을 낼 수 있을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프리카 선수들의 활용이 많은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업팀은 물론이고 고교,대학에도 아프리카 선수들이 상당수 소속되어 있으며 일본 육련은 이들을 정규 선수로 등록, 각종대회에 출전시켜 자국선수들의 실력향상에 자극제로 활용하고 있고 때론 트랙경기인 5000m, 10000m에 페이스 메이커로 출전시켜 자국 선수들의 기록향상을 돕고 있다.
대회 전 출전팀 감독과의 테크니컬 미팅 등을 통해 출전선수들의 몸 상태 등을 체크, 페이스 메이커를 운영함으로써 개인기록,대회기록,한국기록을 경신하다 보면 스피드가 향상돼 마라톤에 입문 후에도 5km 랩타임이 14분대가 빈번한 초고속 스피드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실업팀에서 스피드가 좋은 아프리카선수들을 영입하여 이들을 활용하는 방안이 가장 좋겠지만 국내 여건 상 이것이 어렵다면 연맹차원에서 2~3명의 아프리카 선수들을 계약직으로 채용, 대회에 활용하면 어떨까?
삼성전자는 탄자니아의 존나다사야선수를 영입한 2001년 대한육련에 선수등록과 국내 트랙경기에 출전시켜 선수들의 기록향상을 위해 활용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으나 이를 거절당한 적이 있다.
이제는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대의적 차원에서 이를 다시 한 번 고려해 볼 시점이다.
④ 특화된 대회를 통한 기록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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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는 강원도 횡계,태백,지리산 겨울철에는 제주도,경남 고성 등에 많은 실업팀과 대학팀들이 전지훈련을 위해 찾는다. 이때는 대부분 마라톤을 대비한 훈련이 아닌 체력이나 조정훈련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그랑프리 대회처럼 저녁 6시나 7시경 5000m,10000m 경기를 치루면 어떨까?
저녁시간이라 덥지도 않고 경기도 1시간 이내에 끝나니 큰 부담도 없을 듯하다.
시상도 매 차수별 우수기록을 낸 선수를 파격적으로 포상하고 5~6회 대회를 치뤄 경기 결과를 포인트제로 관리, 마지막 대회 종료 후 종합 포상을 한다면 장거리 트랙 기록에 많은 향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프리카 선수 등의 페이스 메이커도 함께 운영하여 순위보다는 기록 향상에 중점을 두자.
물론 위의 제안들이 상당 부분 수긍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겠지만 국제육상경기연맹이 IAAF의 약자 중 Amateur 대신 Association 을 채택하며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듯이 우리도 매번 국제규모의 육상경기가 끝날 때마다 언론에 기사화되는 "기초 종목인 육상은 부진" 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환골탈태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삼성전자 육상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