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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코 다카하시: 올림픽 마라톤 우승후보

게시일 : 2000-11-08 | 조회수 : 3,603

다카하시의 우승을 예상하기라도 한것처럼 기록한 IAAF 기사입니다.다카하시의 마라톤 입문과정과 대표선수로 선발되기 까지의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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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en Nakamura

2000/9/11 - 일본은 전국적으로 마라톤에 대해 열광적인 나라이다. 일본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에 대해 온 나라가 기념하게 될 것이다.

1984년 올림픽에서 Rob de Castella와 함께 토시히코 세코가 일본에 금메달을 안겨 줄 수 있었지만 Castella와 마찬가지로 세코도 실패하였고 서사시와도 같았던 마라톤 금메달은 Carlos Lopes의 몫이었다.

마라톤 금메달에 대한 일본인의 기대는 지금 나오코 다카하시의 양 어깨에 걸려 있다. 그녀는 숨막힐 듯 더웠던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2시간 21분 47초를 기록할 정도로 매우 빠르며, 그 당시 Tegla Loroupe만이 그녀를 앞지를 수 있었다. 다카하시는 누구보다도 레이스 중 페이스 조절이 자유롭다.

1998년과 2000년 나고야 여자 마라톤 대회에서 그녀의 페이스 조절은 극적이었다. 다카하시 선수는 레이스 중 1Km 구간 당 속도를 3분 30초(완주 시 2:27:40의 페이스)에서 3분 10초(2:13:37대 페이스)까지 조절할 줄 알았다.

나오코 다카하시는 1972년 5월 6일 기후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육상에 입문한 것은 중등학교 시절이었다.

비록 그녀의 중학생 당시 800m 최고 기록은 2분 23초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육상 최우수 팀인 기후 상업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고교에서 그녀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2:13.9를 기록하였다. 몇몇 대학의 입학 권유를 받고 그녀는 오사카 가쿠인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 먹는다.

대학 1-2학년 시기에 그녀는 국내 대학 선수권 1500m와 3000m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하였다.

그녀의 대학 개인 최고 기록은 1500m에서 4:22.89(대학 선수권 기록), 3000m에서 9:13.0이었다.

졸업 후 그녀는 유명한 코치인 요시오 코이데를 만나 리쿠르트 육상 팀에 입단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다.
처음에는 코이데 코치도 거부했지만 거듭되는 그녀의 노력으로 끝내 다카하시는 가입에 성공하였다.

2년 후 그녀는 코이데 코치가 자신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지도할 수 있다고 믿고 그를 따라 세키슈 육상 팀으로 옮겨갔다.

그녀는 1996년 5000m 기록을 16:13.12에서 15:37.15로 향상하고 10,000m를 31:48:23에 주파하는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는 평범한 선수에 불과 했다.

이어 1997년에는 5000m 기록을 13회 세계 선수권에서 15:23.64로 더욱 단축하였다.

1998년에 그녀는 오사카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인 15:21.15를 기록하면서 일본 여성 최초로 IAAF 그랑프리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마라톤 데뷔 무대였던 오사카 여자 마라톤(1997년 1월)은 완벽한 준비를 하지 못하여 그녀에게는 실망스러운 대회였다.

그녀는 2시간 31분 32초로 7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두 번째 마라톤이었던 1998년 나고야 여자 마라톤에서 2시간 25분 48초로 일본 신기록을 세웠다. 경기 중 30Km 지점을 1시간 46분 11초로 통과한 후 그녀는 마지막 5Km를 구간 당 16분 6초와 16분 21초라는 믿을 수 없는 기록으로 뛰었다.

다카하시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때는 98년 겨울에 있었던 방콕 아시안 게임의 마라톤을 통해서였다.

그녀의 5Km 구간 당 기록은 16:37, 16:26, 16:13, 16:22, 16:30, 16:54였다. 30Km 지점부터 비록 혹서로 인해 기록을 17:09, 17:51로 줄였지만 그녀는 2시간 21분 47초로 세계5위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아 경기 이후 충분한 보상의 시간을 가지며, 가히 전설적이라 할 만한 왕성한 식욕 덕분에 그녀의 몸무게는 52.5Kg까지 늘었다(그녀의 경기 당시 몸무게는 45Kg이었다). 그녀는 뷔페식당에서 평균 40개의 스시와 스테이크 2Kg을 먹어치웠다.

그녀는 1999년 5월 세빌리아에서 연습을 시작하였으며 콜로라도 고산지대로 옮겨 순조롭게 진행하였다.

5월 일본에서 있었던 단축(하프) 마라톤 기간을 제외하고는(여기서 1:10:58를 기록) 대부분의 시간을 콜로라도에서 보냈다.

세계 선수권 대회 전, 그녀는 연습에서 20Km와 10Km에서 각각 자신의 최고 기록을 2분과 1분씩 갱신하였는데, 외모가 이상해 보인다고 보고될 정도였다.

1997년 세계 선수권 그녀의 팀 동료인 히로미 스즈키가 1시간 26분에 들어 왔던 14마일 코스에서 다카하시는 1시간 21분을 기록했다. 코치 요시오 코이데는 "다카하시는 2시간 18분 대에 마라톤을 완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불행하게도 세계 선수권 3주전 그녀에게 부상이 발생했다. 그녀는 세빌리아로 향하며 부상부위가 빨리 완치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경기 당일 그녀는 마라톤 참가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세빌리아에서 우승하여 올림픽을 대비하려던 그녀의 당초 계획은 다시 세워져야만 했다.

그녀는 일본 내 마라톤에 참가해야 했다. 그러나, 연습은 여전히 차질을 빚게 되었다. 그녀는 넘어져서 왼팔을 부러뜨리게 된 것이다. 비록 1월에는 지바해 단축 마라톤에서 1시간 8분 55초를 기록했지만, 2월에는 식중독으로 3일간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따라서 나오카 다카하시는 올림픽 출전 자격을 놓고 달린 나고야 여자 마라톤에서 좋지 않은 컨디션 속에 출발선에 서야했다. 99년 세계 선수권 은메달 리스트이자 이미 올림픽 팀에 선발된 아리 이치하시 외에도 도쿄 마라톤에서 2시간 22분 12초를 기록했던 에리 야마구치, 오사카 여자 마라톤에서 2시간 22분 56초를 기록한 하루미 히로야마까지 가세하여, 다카하시가 확실히 입상하리란 보장도 없었으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려면 최대한 빨리 달려야만 했다.

마라톤 레이스 중반까지 다카하시는 그룹에 끼여 달렸다. 하지만, 22.8Km지나면서 그녀는 기어를 바꿨다. 곧 다카하시는 홀로 선두를 질주하게 되었다.

그녀의 20 - 25Km 구간 기록은 16분 51초였으며 이어지는 5Km를 각각 16:16, 16:22로 끊었다. 그녀는 2시간 22분 19초로 우승하며 올림픽에 선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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