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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2위!! 일본생활 11년째의 다니엘 젠가
게시일 : 2002-12-10 | 조회수 : 4,460
일본 실업팀 야쿠르트 소속으로 올 시카고마라톤에서 2시간6분16초로 2위를 차지한 다니엘 젠가 이야기.
우리팀의 존나다사야와 같이 올림픽 출전을 꿈꾸며 Japan 드림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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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기(宮城) · 센다이(仙台) 이큐에이(育英)고등학교에 케냐 유학1기생으로 일본에 온 일본체류 11년째가 되는 다니엘 젠가(야쿠르트). 과거 6번의 마라톤에서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스피드를 살리지 못 하고, 최고 기록은 실업팀 1년째(99년)인 후쿠오카에서 작성한 2시간11분49초. 아직 2시간10분 벽도 돌파하지는 않았지만 첫 해외 경기였던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6분16초 (세계역대 4위와 타이)를 마크. 마지막에 다카오카(高岡-가네보)를 따돌리고 2위로 골인했다. 관계자가 「2시간 6분대를 기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라고 입을 모아서 칭찬한 뛰어난 인재였지만 26세가 되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터갓과 경쟁하고 있었는데 高岡(타카오카)에게 따라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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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3일전 낮. 야쿠르트의 야스다 와타루(安田亘) 감독은 젠가를 시카고 마라톤 코스의 30km 부근에 있는 차이나타운에 식사를 위해 데리고 갔다. 점심식사를 마치자「골인 지점 까지 걸어가 보자」라고 야스다 감독은 말했다.「예! 12km 나 걷는다고?」라고 생각한 젠가 는 난색을 표명했지만「감독님이 말씀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 차로 코스 답사는 충분히 했는데 승부처는 30km지나서. 야스다감독은「진중한 스타일」인 젠가에게 코스 종반의 노면의 상황과 오르막 내리막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서 “산책”은 2시간 강도. 젠가는「길었다」라고 하며 웃었다.
레이스는 차이나타운 근처에 접어들기 전에 이동했다. 타카오카는 28km부근에서 속력을 내기시작 했다. 출반하기 전. 1km를 3분에 달리는 페이스로 달려라 라고 들어도「쫓아 갈 뿐」이라고 각오하고 있던 젠가는 물론 아직 선두집단에서 같이 뛰고 있었다. 타카오카가 앞으로 나갔을 때「따라 가야지」라고 한순간 생각했지만「30km까지는 선두에서 같이 뛰자.」라고 다시 생각했다.
「그때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선두의 무리에 있으면서 아직 충분히 여유 가 있었습니다. 같이 달리고 있는 것은 하누치(미국)와 폴 터갓(케냐) 등 세계 일류 선수. 아직 2시간10분대의 기록을 세운 적도 없는 젠가는 기록에서 보면 뒤떨어 진다는 것을 부 정할 수 없지만「그런 것은 초월해서 대담하게 임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라고 야스이 감독은 말한다. 「하누치와 터갓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경계하고 있었다.」라고 하는 젠가는 당당하게 맞서고 있었다.
드디어 39km 부근. 모로코 출신의 하누치가 엘 모아지즈(모르코)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젠가가「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지?」라고 생각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그 순간「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사람 다 20m앞에 있었습니다.」 터갓이 쫓아 가서 혼자 남겨진 젠가.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커브를 돌고「나머지 3km에서 승부를 내야지」라고 생각했다. 미시간 호에서의 차가운 북풍이 앞에서 불어왔다. 젠가는 신년의 전일본 실업단 역전에서 경험한 군마의 “강바람”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대단한 것도 아니다.」원래 맞바람에는 강한 편이다.
마지막에는 타카오카를 쫓아가서 같은 기록이면서 교차해서 2위가 되었지만 목표는 타카오카가 아니었다. 같은 케냐 출신인 터갓과 경쟁하게 되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달렸는데 결과적으로는 타카오카도 이겼다. 「 미안한 마음
이 들었다.」라고 말한다. 마지막 2.195km를 6분대(6분 51초)로 커버한 것은 7번의 마라톤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자기기록을 단숨에 5분 33초 갱신하는 2시간6분16초의 기록. 세계역대 100위 이하에서 단숨에 4위와 타이 기록으로 뛰어올랐다.
「제대로 된 마라톤을 아직 한번도 하지 않았으므로 또 실패하면 어떻게 할지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다행이다. 지금까지 결과를 내지 못해서, 열심히 도와 주시는 감독님과 스탭들에게 미안한 아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안심이 되었습니다.」
젠가는 진심으로 기쁘게 말했습니다. 야스다 감독은 물론, 아사히 카세이(旭化成) 소 시게루(宗茂) 에스비 식품의 세코 토시히코(瀨古利彦) 감독도「너는 6분대를 끊을 수 있다. 열심히 해라.」라고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달릴 수 있다고 인정 받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좀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괴로웠다. 이번에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큰 수확입니다.」
와이나이나 처럼 올림픽에서 메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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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경제대를 졸업하고 야쿠르트에 들어갈 때 야스다 감독은 젠가에게「세계에서 인정 받는 선수로 만들고 싶다.」고 열의를 가지고 말했습니다.「그 후 여러 번 그 말을 들었습니다.」 라고 젠가는 수줍어 하면서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세계 일류선수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에 한번씩 마라톤을 뛰었지만 그것은 제쳐 두더 라도 사회인이 되고 1년째(99년)인 후쿠오카 국제마라톤에서 2시간11분49초로 10위. 조금씩 행동개시를 하고 있었다. 1개월 후 2000년 신년의 전일본 실업단 역전에서는 18km 인 6구 간에서 20명을 따돌리고 팀을 33위에서 13위로 끌어 올렸으며 여러 사람을 앞지르 는 신기록을 작성했다.
그런데, 도중에 왼쪽 발등의 피로골절. 가을 역전 시즌까지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헛되 게 되었다.「단지 뜻밖의 좋은 결과라고도 말할 수 있을까」라고 야스다 감독이 당시를 회상한다. 2000년 여름 젠가는 북해도 신토쿠마찌(新德町)에 있는 잔디 밭의 크로스컨츄리 코스를 열심히 달렸다.
「덕분에 보폭이 커서 다리가 헛디디게 되는 주법이었는데 헛디디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음해 심기일전의 마라톤 도전은 3월 비와호. 32km에서 무릎을 다쳐서 도중에 포기.
12월 후쿠오카 마라톤은 속도가 크게 떨어져서 2시간20분58초(17위)나 걸렸다. 충분히 연습을 했기 때문에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바로 2개월 후의 벳푸 오이타마라톤 출전을 정했으며 우승은 놓쳤지만 2시간12분43초로 2위에 입상했다.
그 다음이 이번의 시카고가 되지만「지금까지 했던 것과 특별히 다른 것을 한 것은 아니 다.」 본인도 야스다 감독도 말한다.「굳이 말하자면 준비기간이 길었다는 것」이라고 계기가 된 것은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7월 7일 삿뽀르 하프마라톤에서 2위에 입상한 후 젠가는 도내를 여기저기 달렸다. 신토쿠 정(新德町)의 잔디 밭, 벳수카이(別海町),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하마나카(浜中町)「연습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젠가였지만 야스다(安田)감독은「월 800 km에서 1000km는 달렸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올림픽에서 두 대회 연속 메달을 획득한 에릭 와이나이나(코니카)도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케냐 선수라고 하는 점에서 젠가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스피드, 트랙레이스에서도 통용되는 스피드를 가진 젠가는 와이나이와 달리「천천히, 오랫동안」달리는 것은 그다지 특기가 아니다. 스스로도 그러한 연습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야스다 감독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들어서 이번에는 차분히 열심히 달렸다. 8월 중순피로에서 오는 좌통으로 3주간 연습을 쉬었지만 여름철 달리기가 효과를 나타내어서 공백을 극복했다.「오히려 피로가 쌓여서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사제는 웃는다.
「지금까지 일본의 선수는 3개월, 4개월의 마라톤 연습을 하고, 부상으로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기초적인 달리기만이라도 확실하게 되어 있으면 그다지 동요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든다.」 젠가의 시카고 마라톤 도전을 보고 야스다 감독이 느꼈던 것이다. 역으로 젠가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준비와 달리기의 중요성을 인식 한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일본선수권 3000m 장애물에서 8분19초21의 당시 주니어 세계신기록을 세우는 등 화려한 활약을 한 젠가. 반면, 대학교에서는 하코네 역전에도 출전하지 못하고
「인내를 배웠다.」그래도「학창시절이 있어서 지금이 있다.」라고 거침없이. 기록이 좋아 지지 않을 때에는「언젠가 자신의 차례가 온다.」라고 믿고 열심히 노력했다.
겸허함과 진면목, 예의 바른 모습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는」젠가이지만 옛날부터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마음은 다른 사람보다 갑절이나 된다. 그것에 끌린 야스다 감독은 군웅할거의 케냐세력을 헤치고 들어가서 젠가를 아테네 올림픽 대표선수로 보내려는 결의를 하고 있다.
젠가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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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5월 7일생. 26세. 케냐출신. 176cm, 61kg. 센다이이구에디(仙台育英)고 → 유통경제대 → 야쿠르트(99년 4월 입사). 전국고교 역전에서는 사상첫 3년 연속 구간상(3구간, 1구간, 3구간)에 빛나며 2학년 때에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학시절에는 하코네역전 예선전에서 개인 3연승 등의 활약을 했지만 하코네 역전 본선출전의 목표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94년(고3) 일본선수권 3000m 장애에서 8분19초21의 주니어 세계신기록(당시)을 수립했으며 다음해 95년에는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에서는 같은 종목에서 우승. 5000m는 13분36초55(96년 슈퍼 육상), 10000m는 27분51초83(02년, 시즈오카 국제)이 최고
우리팀의 존나다사야와 같이 올림픽 출전을 꿈꾸며 Japan 드림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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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기(宮城) · 센다이(仙台) 이큐에이(育英)고등학교에 케냐 유학1기생으로 일본에 온 일본체류 11년째가 되는 다니엘 젠가(야쿠르트). 과거 6번의 마라톤에서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스피드를 살리지 못 하고, 최고 기록은 실업팀 1년째(99년)인 후쿠오카에서 작성한 2시간11분49초. 아직 2시간10분 벽도 돌파하지는 않았지만 첫 해외 경기였던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6분16초 (세계역대 4위와 타이)를 마크. 마지막에 다카오카(高岡-가네보)를 따돌리고 2위로 골인했다. 관계자가 「2시간 6분대를 기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라고 입을 모아서 칭찬한 뛰어난 인재였지만 26세가 되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터갓과 경쟁하고 있었는데 高岡(타카오카)에게 따라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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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3일전 낮. 야쿠르트의 야스다 와타루(安田亘) 감독은 젠가를 시카고 마라톤 코스의 30km 부근에 있는 차이나타운에 식사를 위해 데리고 갔다. 점심식사를 마치자「골인 지점 까지 걸어가 보자」라고 야스다 감독은 말했다.「예! 12km 나 걷는다고?」라고 생각한 젠가 는 난색을 표명했지만「감독님이 말씀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 차로 코스 답사는 충분히 했는데 승부처는 30km지나서. 야스다감독은「진중한 스타일」인 젠가에게 코스 종반의 노면의 상황과 오르막 내리막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서 “산책”은 2시간 강도. 젠가는「길었다」라고 하며 웃었다.
레이스는 차이나타운 근처에 접어들기 전에 이동했다. 타카오카는 28km부근에서 속력을 내기시작 했다. 출반하기 전. 1km를 3분에 달리는 페이스로 달려라 라고 들어도「쫓아 갈 뿐」이라고 각오하고 있던 젠가는 물론 아직 선두집단에서 같이 뛰고 있었다. 타카오카가 앞으로 나갔을 때「따라 가야지」라고 한순간 생각했지만「30km까지는 선두에서 같이 뛰자.」라고 다시 생각했다.
「그때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선두의 무리에 있으면서 아직 충분히 여유 가 있었습니다. 같이 달리고 있는 것은 하누치(미국)와 폴 터갓(케냐) 등 세계 일류 선수. 아직 2시간10분대의 기록을 세운 적도 없는 젠가는 기록에서 보면 뒤떨어 진다는 것을 부 정할 수 없지만「그런 것은 초월해서 대담하게 임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라고 야스이 감독은 말한다. 「하누치와 터갓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경계하고 있었다.」라고 하는 젠가는 당당하게 맞서고 있었다.
드디어 39km 부근. 모로코 출신의 하누치가 엘 모아지즈(모르코)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젠가가「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지?」라고 생각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그 순간「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사람 다 20m앞에 있었습니다.」 터갓이 쫓아 가서 혼자 남겨진 젠가.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커브를 돌고「나머지 3km에서 승부를 내야지」라고 생각했다. 미시간 호에서의 차가운 북풍이 앞에서 불어왔다. 젠가는 신년의 전일본 실업단 역전에서 경험한 군마의 “강바람”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대단한 것도 아니다.」원래 맞바람에는 강한 편이다.
마지막에는 타카오카를 쫓아가서 같은 기록이면서 교차해서 2위가 되었지만 목표는 타카오카가 아니었다. 같은 케냐 출신인 터갓과 경쟁하게 되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달렸는데 결과적으로는 타카오카도 이겼다. 「 미안한 마음
이 들었다.」라고 말한다. 마지막 2.195km를 6분대(6분 51초)로 커버한 것은 7번의 마라톤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자기기록을 단숨에 5분 33초 갱신하는 2시간6분16초의 기록. 세계역대 100위 이하에서 단숨에 4위와 타이 기록으로 뛰어올랐다.
「제대로 된 마라톤을 아직 한번도 하지 않았으므로 또 실패하면 어떻게 할지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다행이다. 지금까지 결과를 내지 못해서, 열심히 도와 주시는 감독님과 스탭들에게 미안한 아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안심이 되었습니다.」
젠가는 진심으로 기쁘게 말했습니다. 야스다 감독은 물론, 아사히 카세이(旭化成) 소 시게루(宗茂) 에스비 식품의 세코 토시히코(瀨古利彦) 감독도「너는 6분대를 끊을 수 있다. 열심히 해라.」라고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달릴 수 있다고 인정 받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좀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괴로웠다. 이번에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큰 수확입니다.」
와이나이나 처럼 올림픽에서 메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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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경제대를 졸업하고 야쿠르트에 들어갈 때 야스다 감독은 젠가에게「세계에서 인정 받는 선수로 만들고 싶다.」고 열의를 가지고 말했습니다.「그 후 여러 번 그 말을 들었습니다.」 라고 젠가는 수줍어 하면서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세계 일류선수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에 한번씩 마라톤을 뛰었지만 그것은 제쳐 두더 라도 사회인이 되고 1년째(99년)인 후쿠오카 국제마라톤에서 2시간11분49초로 10위. 조금씩 행동개시를 하고 있었다. 1개월 후 2000년 신년의 전일본 실업단 역전에서는 18km 인 6구 간에서 20명을 따돌리고 팀을 33위에서 13위로 끌어 올렸으며 여러 사람을 앞지르 는 신기록을 작성했다.
그런데, 도중에 왼쪽 발등의 피로골절. 가을 역전 시즌까지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헛되 게 되었다.「단지 뜻밖의 좋은 결과라고도 말할 수 있을까」라고 야스다 감독이 당시를 회상한다. 2000년 여름 젠가는 북해도 신토쿠마찌(新德町)에 있는 잔디 밭의 크로스컨츄리 코스를 열심히 달렸다.
「덕분에 보폭이 커서 다리가 헛디디게 되는 주법이었는데 헛디디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음해 심기일전의 마라톤 도전은 3월 비와호. 32km에서 무릎을 다쳐서 도중에 포기.
12월 후쿠오카 마라톤은 속도가 크게 떨어져서 2시간20분58초(17위)나 걸렸다. 충분히 연습을 했기 때문에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바로 2개월 후의 벳푸 오이타마라톤 출전을 정했으며 우승은 놓쳤지만 2시간12분43초로 2위에 입상했다.
그 다음이 이번의 시카고가 되지만「지금까지 했던 것과 특별히 다른 것을 한 것은 아니 다.」 본인도 야스다 감독도 말한다.「굳이 말하자면 준비기간이 길었다는 것」이라고 계기가 된 것은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7월 7일 삿뽀르 하프마라톤에서 2위에 입상한 후 젠가는 도내를 여기저기 달렸다. 신토쿠 정(新德町)의 잔디 밭, 벳수카이(別海町),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하마나카(浜中町)「연습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젠가였지만 야스다(安田)감독은「월 800 km에서 1000km는 달렸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올림픽에서 두 대회 연속 메달을 획득한 에릭 와이나이나(코니카)도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케냐 선수라고 하는 점에서 젠가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스피드, 트랙레이스에서도 통용되는 스피드를 가진 젠가는 와이나이와 달리「천천히, 오랫동안」달리는 것은 그다지 특기가 아니다. 스스로도 그러한 연습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야스다 감독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들어서 이번에는 차분히 열심히 달렸다. 8월 중순피로에서 오는 좌통으로 3주간 연습을 쉬었지만 여름철 달리기가 효과를 나타내어서 공백을 극복했다.「오히려 피로가 쌓여서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사제는 웃는다.
「지금까지 일본의 선수는 3개월, 4개월의 마라톤 연습을 하고, 부상으로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기초적인 달리기만이라도 확실하게 되어 있으면 그다지 동요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든다.」 젠가의 시카고 마라톤 도전을 보고 야스다 감독이 느꼈던 것이다. 역으로 젠가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준비와 달리기의 중요성을 인식 한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일본선수권 3000m 장애물에서 8분19초21의 당시 주니어 세계신기록을 세우는 등 화려한 활약을 한 젠가. 반면, 대학교에서는 하코네 역전에도 출전하지 못하고
「인내를 배웠다.」그래도「학창시절이 있어서 지금이 있다.」라고 거침없이. 기록이 좋아 지지 않을 때에는「언젠가 자신의 차례가 온다.」라고 믿고 열심히 노력했다.
겸허함과 진면목, 예의 바른 모습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는」젠가이지만 옛날부터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마음은 다른 사람보다 갑절이나 된다. 그것에 끌린 야스다 감독은 군웅할거의 케냐세력을 헤치고 들어가서 젠가를 아테네 올림픽 대표선수로 보내려는 결의를 하고 있다.
젠가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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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5월 7일생. 26세. 케냐출신. 176cm, 61kg. 센다이이구에디(仙台育英)고 → 유통경제대 → 야쿠르트(99년 4월 입사). 전국고교 역전에서는 사상첫 3년 연속 구간상(3구간, 1구간, 3구간)에 빛나며 2학년 때에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학시절에는 하코네역전 예선전에서 개인 3연승 등의 활약을 했지만 하코네 역전 본선출전의 목표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94년(고3) 일본선수권 3000m 장애에서 8분19초21의 주니어 세계신기록(당시)을 수립했으며 다음해 95년에는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에서는 같은 종목에서 우승. 5000m는 13분36초55(96년 슈퍼 육상), 10000m는 27분51초83(02년, 시즈오카 국제)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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