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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선수분석]왕국의 위엄을 지킨 구세주

게시일 : 2003-10-31 | 조회수 : 3,867

파리세계선수권 5000m는 대회 전부터 기대가 높았다. 시나리오 대로 1500m에서 우승한 엘 게루즈(모로코)와 10000m에서 우승한 케네니사 베켈레 (에티오피아)가 중간 5000m에서 2관왕을 놓고 격돌했다.

세계대회사상 1500m, 5000m 2관왕을 한 선수는 하늘을 나는 핀란드의 파보 누르미 뿐이다.(주1) 한편 5000m, 10000m 2관왕(주2)도 세계대회에만 제한해서 보면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의 미루츠이후타(이디오피아)이후에는 전혀 없다. 황제인 게브라셀라시에도 93년 세계선수권에서 10000m 우승, 5000m 2위를 했다. 5000m는 케냐 남자 장거리 선수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기회였다.

전 대회인 에드먼튼 대회에서는 금메달 3개를 포함해서 8개의 메달을 획득한 케냐 남자 중,장거리 세력. 파리 대회에서 마지막 날을 맞았을 때에는 3000mSC의 은메달 한 개 뿐. 케냐를 위기에서 구해줄 구세주로 기대를 받은 선수는 현재 세계 제일의 막판 스퍼트를 자랑하는 아브라함 체비이다. 세계선수권 5000m의 레이스는 팬들의 상상을 불러일으켰다.(주3) 전광석화와 같은 마지막 스퍼트를 자랑하는 체비이, 롱 스퍼트에서 중거리계에 군림하고 있는 엘 게루즈, 그리고「어떻게 해서 그에게 이길까?」라고 라이벌에게 말하게 하는 베켈레.
어떻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페이스로 만드는가? 이러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갈팡질팡하는 레이스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케냐를 위기에서 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엘 게루즈, 베켈레의 2관왕의 꿈을 깨어버린 선수가 “자칭” 18세의 엘리우드 킵초게이다. 케냐 전문가로서 유럽에서는 이름이 높은 존 마나스가 그의 프로필을 소개할 것이다.

자신보다 뛰어난 두 사람을 밀어내고 간신히 케냐 대표 선수에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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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세계선수권 5000m, 900m를 남겨둔 시점에서 7명의 선수가 금메달을 다투고 있다. 그 시점에서 엘리우드 킵초게가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적었다. 세계선수권 케냐 선발전에서 전년도 1위와 2위에 랭크되어 있던 벤자민 리모와 새미 킵케테루를 따돌리고 3위에 입상한 킵초게는 세계선수권 케냐 대표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잇는 두 사람을 따돌리고 간신히 대표로 선발되었다. 레이스 마지막 2바퀴를 남겨둔 시점에서 남아 있던 나머지 세 사람의 케냐 대표선수는 모두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리챠드 리모는 5000m의 디펜딩 세계 챔피언이다. 또 존 키보웬은 2번 세계 크로스컨트리 쇼트 부분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아브라함 체비이는 케냐의 세계선수권 선발전을 우승으로 장식했으며 이번 계절의 그랑프리 대회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이다. 유럽 대회에서 “황제” 게브라셀라시에를 2번, 그리고 젊고 어린 후계자 베켈레를 1번, 마지막 스퍼트에서 따돌린 체비이의 마지막 스퍼트는 예술품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알고 있는 것처럼 케네니사(베켈레)는 세계 크로스컨트리에서 2번, long과 short의 2관왕을 달성한 선수이다. 파리 세계선수권의 10000m에서는 마지막 5000m를 5000m 대회기록보다 빠른 12분 57초 24로 달려서 우승을 한 그는 마지막 날의 5000m에서도 우승후보의 한 사람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의 우승 후보는 파리의 1500m에서 예상외로 쉽게 4연승을 달성한 엘 게루즈이다. 그도 2관왕을 계획하고 시니어 선수권에서는 처음으로 5000m에 도전했다. 킵초게에 있어서 이런 상황 속에서 금메달의 가능성은 낮았다. 3일전의 예선전에서 활기찬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었던 2002년 세계 크로스컨트리 주니어부 및 세계 주니어 선수권 10000m를 제패한 게브레 마리암의 메달 획득 확률이 킵초게 보다 높다고 생각되었다. 나머지 900m에서 엘게루즈는 롱 스퍼트에 들어갔다. 메달 후보 선수들은 모두 선두집단에 있었지만 마지막 한바퀴의 종이 울렸을 때 엘 게루즈를 따라간 선수는 킵초게와 케네니사 뿐이었다. 마지막 코너에서 킵초게는 선두에서 2m의 2위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3위의 케네니사가 스퍼트를 내었다. 동시에 킵초게도 달렸으며 케네니사는 코너를 크게 도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킵초게와 엘 게루즈의 홈 스트레이트에서의 경쟁은 시드니 올림픽 1500m에서의 노아 게니와 엘 게루즈의 마지막 우승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킵초게가 엘 게루즈를 마지막으로 따라잡는 모습에서 3년 전 같은 나라의 게니의 모습을 생각하는 팬들도 많았다. 마지막 한바퀴를 53초로 커버한 킵초게의 우승 타임 12분 52초 79는 세계선수권 신기록이었다.

파리 선수권에서의 자신감을 높여준 선발전과 스톡홀름에서의 경기
18세로 세계 챔피언이 된 엘리우드 킵초게는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는가?
최근에는 무명의 신인이 5000m 케냐 대표선수가 되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지만 킵초게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주니어로서의(지금도 아직 주니어이지만)경력은 뛰어나다. 그는 03년 세계 크로스컨트리 선수권 주니어 부의 챔피언이며 오슬로의 골든 리그에서는 12분 52초 61의 5000m 주니어 세계기록을 수립했다. 7년 전에 같은 나라의 필립 모시마가 수립한 기록(12분 53초 72)을 1초 앞당긴 기록이다.

그래도 파리 세계선수권에서는 킵초게의 우승을 예상한 사람들은 적었다. 오슬로의 레이스 후의 코멘트로 판단을 하면 그 자신도 베켈레를 따돌리고 우승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베켈레가 우승한 6월의 오슬로 골든리그 대회에서 주니어 기록을 수립하면서 3위에 입상한 킵초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번의 목표는 주니어 세계 기록이었다. 그러나 베켈레에게 우승하는 것은 어렵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는 아직 너무 빠르다.」그러나 그 후 2개월 사이에 세계선수권 케냐 선발전에서 3위에 입상했으며 스톡홀름 그랑프리 대회를 13분 00초 63의 타임으로 제압해서 그의 자신감은 높아지고 있었다.

파리 레이스 후「선수권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지만 파리의 결승에서는 페이스가 빠르면 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모두 체비이, 베켈레, 그리고 히사무를 마크했으며 베켈레와 히사무가 체비이를 마크하면서 달린다면 나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말라리아로 세계 주니어 단념 실력 발휘의 장소를 유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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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초게가 실제로 달리기 시작한지 아직 4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놀이로 달렸던 그는 99년 졸업하고 나서는 스스로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01년에는 건전지회사 에바레디가 주최하는 크로스컨트리 시리즈에서 종합 2위에 입상했다. 그것이 92년 올림픽 3000m SC은메달리스트인 동향인(카푸시시유와)인 패트릭 생의 눈에 띄었다. 생은 즉시 그것을 유명한 네덜란드인 에이전트, 요즈 헤르멘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헤르멘스는 흥미를 가지고 1년간 킵초게를 지켜보게 되었다.

02년의 1년간은 타이밍이 나빠서 병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킵초게에게 있어서는 결과적으로는 괜찮은 해였을 것이다. 세계 크로스컨트리 케냐 선발전의 주니어부에서 우승한 그는 더블린에서의 세계 크로스컨트리 선수권의 대표로 선발되었지만 선수권 전에 병이 나서 유감스럽게도 5위에 그쳤다. 우승은 이디오피아의 에브라함이 했다. 킵초게는 세계 주니어 선수권 케냐 선발전 5000m에서도 우승했지만 세계 주니어선수권 전인 이번에는 상당히 심각한 병인 말라리아에 걸려서 자메이카에 갈 수가 없었다. 그 후 회복한 그는 헤르멘스에게 불려 유럽에서 시즌을 끝내게 되었다. 5000m를 13분 14초 20과 13분13초 03, 그리고 3000m를 7분 46초 34로 달린 그의 진실한 가능성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세계왕자로서 귀향「아테네에서 금메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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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년 건강을 회복한 그는 다시 케냐 세계 크로스컨트리 선발전 주니어부를 제패했으며 케냐대표가 되었다. 세계 크로스컨트리에서는 우간다의 보니페스 키푸로프와의 마지막 스퍼트 경쟁에서 물리치고 주니어 부에서 우승을 이루었다. 그 후 밀라노 그랑프리 대회에서 트랙 시즌에 들어간 그는 5000m를 13분 11초 01로 우승. 오슬로에서 주니어 세계기록을 수립. 파리 골든 리그에서는 다시 12분대의 12분 55초 52로 4위에 입상했다. 계속되는 세계선수권 케냐 선발전에서 3위. 스톡홀름의 그랑프리 대회에서도 우승을 했다.

세계선수권 우승 후, 브뤼셀에서 개최된 골든 리그에서는 3000m에서 아리 사이드 시에프에게 100분의 12초 차이로 졌지만 모나코에서 열린 월드 어슬레틱 화이날에서는 13분 23초 34의 평범한 기록으로 강호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했다. 그는 10월에 나이지리아에서 개최가 예정되어 있는 전(全)아프리카 대회의 케냐 대표로 선발되었지만 모나코에서 돌아오자마자 피로를 이유로 대표를 사퇴했다. 그 후 귀향한 그를 위해 근교의 엘도레트에서 축하연이 열렸다. 「세계챔피언이 된 흥분은 아직 가라 않지 않았다. 내년에는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의 칭호도 더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킵초게는 88년 이래 중단된 올림픽 5000m의 금메달을 케냐에 안겨 줄 수 있을 것인가?

주1 : 1924년 7월 10일 파리올림픽에서 누르미는 우선 1500m에서 우승. 그리고 나서 약 1시간 전후, 5000m에서도 우승했으며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1500m, 5000m 2관왕을 달성했다. 이 2관왕은 세계선수권에서는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다. 세계대회 이외에는 66년의 영국연방대회에서 킵 케이노가 1마일, 3마일의 2관왕을, 66년 아시아대회에서 사와기가 90년과 98년 아시아 대회에서 모하메트 슐레이만이 각각 1500m, 5000m의 2관왕을 달성했다.

주2 : 올림픽에서 5000m, 10000m 2관왕을 달성한 것은 12년의 코레마이넨, 52년의 자토벡, 56년의 쿠츠, 72, 76년의 비렌, 그리고 80년의 이후타. 세계선수권에서 2관왕에 성공한 선수는 없다.

주3 : 유감스럽게도 3000m SC우승자로 6월에는 5000m에서 엘 게루즈를 물리침 적이 있는 사이후 샤헨은 5000m를 달리지 않았다.

주4 : 트랙 언더 필더 뉴스지의 랭킹

주5 : 원래 1시간주 세계기록 보유자

엘리우드 킵초게(3000m, 5000m 크로스컨트리)1984년 11월 5일 리프트발레주, 난딘지구 켑사베트 근교의 가부시슈와에서 태어났다. 주로 카부시슈와에 살면서 카부타가트(엘도레트의 동쪽 30km)의 글로벌 스포츠캠프에서 연습을 했으며 여름 시즌 중에는 네덜란드의 나이메헨에 거점을 두고 있다. 99년
가부테르 고교를 졸업. 에이전트는 글로벌 스포츠 커뮤니케이션(요즈 헤르멘스), 코치는 패트릭 생, 조셉 페리모. 부족은 칼렌진으로 5형제 중에 막내. 양친은 소규모의 농원을 운영하고 있다.

나이를 속이는 것에 대해서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 국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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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주니어 선수에 대해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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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로 세계선수권 금메달 리스트가 되면서 일약 화제의 주인공이 된 킵초게. 그러나 이「18세」라고 하는 나이가 정확한 것인지 단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ATFS회원이면서 전세계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는 K. KEN 나카무라씨가 이「연령」에 대해서 하나의 견해를 들려 주었다.

연령은 모두 “자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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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성이 의심되는 출생증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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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우드 킵초게는 파리 세계선수권 5000m에서 18세 10개월로 우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는 세계최연소 챔피언이 아니다. 1993년 세계선수권 5000m에서 18세 6개월의 이스말 키루이가 우승했다.

그들의 나이를 육상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으로 보고 있으며 그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킵초게는 99년 15세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하지만 케냐에서는 그 나이에 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특히 그의 고향과 같이 시골에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키루이는 91년에 군대에 입대했는데 18세 전의 입대는 허가가 되지 않으므로 슈투트가르트(독일 남부의 공업도시)에서의 키루이는 적어도 20살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러한 “사기행위”와 같은 일이 태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일류 선수들의 출생지인 시골에서는 공식적인 출생증명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출생 증명서는 여권이 필요한 경우에 지역의 기록보관소에 출두해서 발행을 요청하는 것이다.」라는 상식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발행인은 본인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받아들여서 출생증명서를 발행한다. 근래에는 어느 가정에서나 출생기록을 보관하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케냐인은 정확한 출생월일을 알고 있다. 그러나 출생증명서의 교부신청서에 그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입학 시와 재학 중에 공식연령을 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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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많은 케냐인이 자신의 정확한 생년월일을 몰라서 마음대로 생년월일을 날조하고 조작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것은 초등학교에 올라갈 때부터 시작된다. 대부분의 케냐인은 6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은 적다. 이유는 다양하다. 어린 형제를 돌보는 경우도 있으며 가업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고, 또는 부모님이 동시에 여러 아이들의 학비를 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면 외견상, 가능한 한 어린 나이를 주장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보다 2-3세 정도 적은 숫자가 시작된다.

최근의 아이들은 6세 정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급”이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경우에는 특히 아이들이 장래성이 있는 스포츠 선수인 경우에는 주니어 대회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나이를 조절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조언을 하는 것은 교장, 또는 코치, 에이전트, 미국대학의 리크루터, 그리고 드물게는 케냐 육상연맹의 담당자인 경우도 있다. 이처럼 생년월일의 추정과 조작이 빈번하게 이루어져 온 역사에서 보면 케냐에서는 나이를 조작하는 것에 대해서 죄악감이나 죄의식은 거의 없다. 이것은 케냐인의 도핑에 대한 견해 (※필자주:용서하기 어려운 것)와는 극히 상대적이다.

실전의 주니어 선수가 22-23세의 선수와 경쟁하는 불공평함에 대해서 죄의식은 없다. 최근까지 케냐의 임원들은 케냐의 라이벌 나라인 이디오피아의 주니어 선수들의 나이가 조작되어 있는 한 일방적인 무장해제와 동등한 행위인 자국선수의 연령조작의 관리에 있어서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이 태도도 변화하고 있다. 최근 케냐 스포츠회의 새로운 장관 나짚 바라라는 아프리카 토너먼트에 참가하고 있는 18세 이하의 축구 팀 내에 나이를 조작한 선수가 있다고 하는 증거가 돌고 있을 때 팀을 토너먼트에서 철수시켰다. 케냐의 축구계는「증거불충분」이라고 항의를 했지만 바라라의 결단은 확고했다. 공식문서 없이 연령사기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바라라는「케냐 대표의 주니어 선수는 학생(고등학생)인 것을 의무 시 한다.」고 하는 규정을 세우는 것에 찬성했다. 물론 그 규정에 따라 선수가 20세 이하라고 하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경기력은 주니어 레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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